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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숨겨진 미소는 어디에?>(페드로 코스타, 2001)를 봤다.

김보년 2016. 6. 30. 14:37

굉장히 아름다운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를 찾아가 이들이 어떤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을 찍은 작품이다. 두 사람은 자유롭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로는 가벼운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두 감독의 얼굴을 많이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크린을 응시하거나 서로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찍었다면 아마 굉장히 매혹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페드로 코스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편집대 앞에 앉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그냥 찍는다. 심지어 편집실이라는 물리적 조건 때문에 그 뒷모습조차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는 두 감독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 만큼이나 이 촬영이 조금 감동적이었다.


두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메모.

1. 편집을 하는 이상 현실의 완벽한 연속성을 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2. 상상력만 추구하면 리얼리티를 잃기 쉽고, 리얼리티만 추구하면 상상력을 잃기 쉽다. 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후자가 좀 더 낫다.

3. ‘천재’란 건 없다. 노력과 도전의 대가가 있을 뿐이다.

4. 편집할 때는 배우의 행동 방향(손의 작은 움직임이나 시선까지 포함한다), 타이밍에 맞춰 숏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 이걸 제일 먼저 한 사람은 채플린이다.

5. (더 많았는데 벌써 다 까먹었다…)


참고로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는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 시리즈 “영화, 우리의 시간” 용으로 다시 편집한 것이다. <당신의 숨겨진 미소는 어디에?>는 35mm 이고 이 영화는 TV용 포맷이다. 그래서 같은 장면, 같은 검은색이라 하더라도 그 느낌이 매우 다르다. 이걸 비교하며 보는 경험이 꽤 재미있었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두 영화 모두 마지막 장면이 같다.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가 편집실에서 나온다.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다. 장-마리 스트라우브는 계단에 걸터 앉고, 다니엘 위예는 계단 위로 올라가 화면에서 사라진다. 장-마리 스트라우브는 기침을 몇 번 하다가 라이터를 꺼내 괜히 불을 몇 번 켜본다. 그러는 사이 영화가 끝난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마지막 장면의 피곤하고 적막한 정서,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의 리듬이 정말 좋다. 이건 진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니 직접 한 번 보시길(https://youtu.be/uR6m1B0_I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