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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뒤덮은 먼지> / <쿠르드어를 지키는 사람들> / <아랄쿰>(2022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김보년 2022. 11. 1. 14:04

꿈을 뒤덮은 먼지 (스테파니 탕킬리산, 무하마드 파드리)
  8분 길이의 짧은 다큐멘터리 〈꿈을 뒤덮은 먼지〉는 주류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는 현실, 그리고 우리가 굳이 찾아보지 않는 현실의 민낯을 정면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그 현실은 바로 인도네시아의 니켈 광산으로 감독은 폐허가 된 광산을 찍고,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기본적인 연출만으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니켈을 캐기 위해서는 땅을 뒤엎어야 하며, 그후에는 곧 산사태가 일어나고 바다가 오염된다. 또한 그 땅에서는 앞으로 누구도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외치며 전기차를 비롯한 배터리 산업 전반에 희망을 거는 동안 누군가의, 특히 가난한 국가의 삶의 터전은 회복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두에게 관람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쿠르드어를 지키는 사람들 (사르코 메스가리)
  〈쿠르드어를 지키는 사람들〉은 이란에서 활동하는 쿠르드어 교사들을 그린 작품이다. 이란의 쿠르드인은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음에도 정치적 문제 때문에 정규 교육 기관이나 교육 과정을 만들 수 없다. 이에 뜻을 모은 사람들은 쿠르드인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마을로 직접 찾아가는 이동 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관객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중동의 정치에 관심이 많은 관객은 이란과 쿠르드족의 깊은 갈등을 볼 수 있으며, 교육에 관심이 많은 관객은 언어 교육의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슬람 문화의 여성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이 작품은 어떤 작품보다 뭉클한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쿠르드 민족의 현실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꼼꼼하게 기록한 귀중한 다큐멘터리다.

아랄쿰 (다니엘 아사디 파에지, 밀라 주룩텐코)
  비극의 시작은 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물이 마르면 물고기가 사라지고, 물고기가 사라지면 새가 사라지고, 다음에는 육지의 여우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고 나면 사람은 과연 어떻게 혼자 살아갈까? 〈아랄쿰〉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거대한 호수였지만 지금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으로 바뀐 땅의 모습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만약 사전 정보 없이 이 모습을 보면 언뜻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고운 모래의 언덕 위에는 낡은 배가 버려져 있고, 그 배에는 그물이 걸려있다. 그러나 관객은 이곳이 한때 어부들이 살아가던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곧 알고 망연자실해질 것이다. 참고로 영화의 제목인 ‘아랄쿰’은 아랄해(Aral Sea)가 사막으로 바뀐 뒤 이 땅을 지시하기 위해 새로 만든 말이다. 원래 존재해서는 안 될 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