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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9)

김보년 2021. 10. 1. 20:31

미소야

   없어진 식당에 관한 글을 쓰는 건 아무 소용 없는 일 같지만 짧은 기록 하나는 남아도 좋을 것 같다. 종로 미소야는 자주 가지 않았지만 항상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가게였다. 슬슬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오늘 뭐 먹지?’하고 고민할 때 미소야는 항상 후보 중 하나였다. 특히 뭔가 든든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미소야 생각을 자주 했다. 미소야에는 다양한 돈까스 메뉴가 있고, 무엇보다 미니 우동을 같이 주는 ‘돈까스 정식’ 메뉴가 있었다. 종종 허기가 찾아 오면 뭐든 다 먹을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미소야는 매력적인 후보로 다가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소야를 찾는 건 열 번 중 한 번 정도였다. 미소야는 항상 손님이 많은 편이라 혼자 찾기 애매했고, 가격도 은근히 높은 편이었다. 맛도 특별하게 뛰어난 건 아니라서(하지만 이를 익숙한 맛이라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이 돈에 굳이 미소야를?’ 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식당을 찾았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면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결국 미소야는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미소야의 카레돈까스미니우동정식이 다시 한 번 먹고 싶어졌다. 물론 미소야 브랜드 자체는 건재하니 다른 동네에 가도 되겠지만, 슬리퍼를 신고 내 집 앞 식당처럼 편하게 밥을 먹던 경험은 다시 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오랫동안 찾은 관객들이라면 아마 다들 나와 비슷한 종류의 서운함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 미소야가 있던 가게는 아직도 비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