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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12)
김보년
2021. 10. 6. 20:06
할머니 칼국수
요즘 익선동은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든다. 5~6년 사이에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에 있던 시절, 익선동은 점심 먹고 잠깐 산책을 하기에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네였다. 주민들의 개인 공간이란 느낌이 강했고, 무엇보다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지금 익선동은 사람이 살지 않는 시끄러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더니 그 다음에는 옷가게가 들어왔고, 지금은 사진관과 오락실까지 들어왔다. 그리고 새로 생긴 식당과 옷가게들은 밤에도 음악을 크게 튼다. 옛날에는 원래 있던 집의 형태를 유지한 가게가 많았다면 지금은 완전히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경우도 생겼다. 새로 생긴 가게들의 독특한 미적 감각은 차치하더라도, 나에겐 이 급격한 변화 자체가 좋게 다가오지 않는다.
낙원상가에서 시작되는 포장마차 거리 뒤쪽에 위치한 “할머니 칼국수”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오래된 가게 중 하나다. 낙원상가 시절에는 평범한 식당을 찾듯이, 그냥 맛있는 수제비를 먹기 위해 찾았지만, 요즘은 기억 속의 ‘옛 익선동’을 떠올리며 찾는다. 가격은 살짝 올랐지만 맛은 그대로고 양도 그대로다. 손님이 없는 시간을 찾아 ‘칼제비’를 맛있게 먹고 나오면 거리는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하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극장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