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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부산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김보년 2021. 10. 13. 17:34

마르크스 캔 웨이트 / 마르코 벨로키오 / 2021
-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고, 젊은 시절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 벨로키오 감독의 이전 작품 클립이 많이 나온다. 이 영화들을 안 본 사람들이면 좀 심심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부끄럽지만, 많이 안 본 쪽에 가깝다.
- 제목을 포함해 ‘공산주의’에 관한 감독의 복잡한 마음이 느껴진다. 특히 신부가 등장해 감독에게 위로를 건네는 후반부 장면은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 같다. 가족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뜬금없이 신부가 등장하는지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자타공인 공산주의자인 감독이 자기 가족들의 아픔에 대해서만큼은 젊은 신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모습은 조금 뭉클하기도 했다. 감독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고 한다. 

사랑과 복수 / 에드윈 / 2021
-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진 장르 영화. 70~80년대 쇼브라더스, 골든 하베스트 스타일을 재해석했고 놀라운 액션 장면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이 영화도 관련 장르에 지식이 많을 수록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무작정 장르 페티쉬만 추구한 영화는 아니다. 특히 현재와 과거를 슥슥 잘라 붙이는 플롯 전개는 신선하고 근사했다. 여주도 정말 멋졌다.

신의 손 / 파올로 소렌티노 / 2021
- 파올로 소렌티노는 1970년생이다. 나이가 그렇게 안 많은데 왜 이렇게 작품마다 (안 좋은 의미에서)노인의 느낌이 나는지 궁금했는데 이 자전적 영화를 보고 호기심이 조금 해소됐다. 그렇다고 그런 면을 좋아하게 됐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소렌티노의 등장 인물들이 득도한 것 같은 말과 행동을 할 때 여전히 민망하고 부담스럽다. 
- 하지만 유머 감각은 좋았다. 인생의 비극적 순간을 건강한 웃음과 함께 보여주는 장면들에서는 나도 많이 따라 웃었다. 감탄도 했다.
- 아무리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도, 아무리 십대 남자애들이 이성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신의 손>에 나온 섹스 관련 에피소드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모와의 근친상간적 관계나 이웃 할머니와의 섹스를 그냥 ‘감독에게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썬다운 / 미셸 프랑코 / 2021
- 나는 2/3 지점까지 팀 로스와 샬롯 갱스부르의 관계를 잘못 이해했다(부부가 아니고 남매였다). 그런데 바로 그 착오 때문에 영화를 너무 흥미진진하게 봤다. 나만 그렇게 본 건지 궁금하다. 
- 그런데 거의 2/3 지점을 넘어서며 또 하나의 중요한 설정이 추가로 등장하는데, 이 부분 때문에 영화 전체가 촌스럽게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그냥 둬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이야기를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든 건지 모르겠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 / 미구엘 고메스, 모린 파젠데이로 / 2021
- 어떤 감독(물론 미구엘 고메스)의 신작 촬영 현장을 시간 역순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 딱히 엄청나게 새로운 미학적 시도를 한 건 아닌데, 그냥 영화가 귀엽고 따뜻하다. 숲도 많이 나오고 개도 많이 나오고 비오는 장면도 있다. 보기 전 어떤 기대를 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것 같은데 나는 편한 마음으로 재밌게 봤다.
- 하지만 다음 작품도 이렇게 느슨하게 나온다면 그때는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