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프리오리>(라브 디아즈, 2014)
라브 디아즈의 2014년 작 <아 프리오리 Mula sa kung ano ang noon>는 군인들이 민간인을 고문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이때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숏의 지속 시간은 비교적 긴 편이다.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두 가지를 보게 된다. 하나는 고문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군인들이다. 당연히 그 자체로도 끔찍한 장면이며 5시간 40분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에도 끔찍한 장면이다. 감독은 긴 시간 동안 하나의 공동체가 망가지는 장면을 서서히 보여주었지만 마지막 장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이를 확인시켜 준다. 라브 디아즈는 <아 프리오리>를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이나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련한 감상으로 마무리할 생각이 없다.
가혹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단호한 결정은 엔딩씬의 바로 앞 장면과 대조하면 더 도드라진다. 조심히 말하자면 이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다. 다시 말해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끝까지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이 조촐하게 그의 장례를 치러준다. 작은 뗏목에 시신을 올리고 불을 피운 뒤 강물에 실어 보낸다. 불은 꺼질듯 말듯 타오르고 비는 계속 내린다. 카메라는 강의 한복판에서 이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빗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사람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정서는 이미 화면 가득 차고 넘친다. 물론 슬프지만, 동시에 지나간 무언가를 떠나보낼 때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이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영화가 끝났다면 <아 프리오리>는 영화로 만든 연가戀歌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기어이 관객의 눈앞에 처참한 현실을 갖다 놓고야 만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 남은 자들은 현실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현실은 사람을 나무에 묶어놓고 신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가하는 곳이다. 바로 앞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기에 이 현실은 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그리고 감독은 이 장면에서 영화를 끝내기를 바랐다. 그 선택 때문에 <아 프리오리>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