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얼굴 앞에서> / <휴가>
당신얼굴 앞에서 / 홍상수 / 2021
- <인트로덕션>에 이은 저예산 촬영에 어떤 미학적 효과가 있을까? <인트로덕션>은 흑백이라서 화면 해상도가 낮다는 게 그리 도드라지지 않았고, 저화질의 화면을 활용한 놀라운 촬영도 있었다. 하지만 컬러로 찍은 이번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동안 눈이 조금 피곤할 정도였다. 물론 실내 장면에서 저화질의 이미지가 주는 독특한 미감이 있다는 건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만(특히 마지막 장면) 야외 장면에서는 집중이 살짝 힘들었다. 이혜영 배우가 입었던 분홍색 드레스나 붉은 립스틱의 색이 지금보다 더 생생하게 잘 살아났다면 어땠을까?
- 하지만 현장 스탭을 최소한으로 운영함으로써 감독과 배우들이 자신의 작업에 더 자유롭게 집중할 수 있었던 거라면, 그래서 아름다운 장면들이 만들어진거라면 설득될 수밖에 없다.
- 아주 단순한 장치를 통해 서사와 감정을 복잡하게 증폭시키는 연출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후반부 이혜영 배우의 결정적 대사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누구도 알 수 없겠지.
휴가 / 이란희 / 2020
- 작업장 막내 준영 역할을 맡은 김아석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뉴스나 드라마 등에 막연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20대 초반 남성 청년’의 실체가 불쑥 스크린에 등장한 것 같았다. 이 인물은 타인과의 소통에 서툰 게 아니라 소통을 향한 욕망 자체가 없어 보이며, 변화에 대한 욕망도 없이 그냥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만 살고 있다. 기성 세대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소위 ‘우울증’의 증상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일하고 밥을 먹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그런데 그는 도대체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 걸까?). 이런 ‘평범하고 이상한’ 인물 타입을 영화를 통해 보여준 건 거의 사회학적 성취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