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문희> 리뷰 / 2021 충무로영화제 감독주간
볼 수 없는 영상
1.
<오! 문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주인공의 직업이 영상을 보는 일이라는 설정이었다. 보험 조사원인 두원(이희준)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 문희(나문희)와 어린 딸을 홀로 보살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두원이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와 딸이 뺑소니 사고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딸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혼수 상태에 빠지고, 어머니는 사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사건이 미궁에 빠져 경찰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자 두원은 어머니의 단편적인 기억과 함께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두원이 직장에서 주로 하는 일은 CCTV나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하며 교통사고의 진상을 밝히는 일이다. 그는 카메라의 영상을 수집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잘잘못을 가리거나 범인을 찾아낸다. 딸을 다치게 한 범인을 찾을 때도 두원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큰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새삼 드러나는 건 우리 주위에 카메라가 정말 많다는 사실, 그리고 카메라가 명실상부 객관적인 기록관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무대가 (서울이 아닌) 충청도의 작은 마을로 설정되어 있음에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딸과 어머니가 증언을 할 수 없을 때, 두원은 먼저 카메라를 찾는다. 그는 일단 사고 현장에 있던 CCTV와 현장 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의 블랙박스 영상을 구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뺑소니 차량의 부서진 부품이나 번호판의 희미한 흔적을 찾기도 하지만 이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의 조각을 메우는 데 쓰이며 결정적인 역할은 하지 못한다. 결국 두원의 가장 큰 목표는 범인이 찍힌 영상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요약해도 무방하다. 즉 ‘사건의 해결=영상 확보’라는 등식이 만들어진다.
동시대 이미지 환경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런 설정 자체가 흥미로웠다. 특히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이 설정은 더욱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두원은 범인이 이미 마을을 빠져나갔다는 가정을 세운 뒤 과감하게 추적 범위를 넓힌다. 이때 범인의 도주 경로를 예상하는 작업 역시 카메라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범인이 탄 산타페 차량이 도로 CCTV에 찍히지 않았다는 정보를 역으로 이용해 CCTV가 없는 도로만 찾아나선 것이다. 두원은 결국 외딴 국도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의 방범용 CCTV에서 범인을 발견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비교해 다소 이질적인 애니메이션까지 동원한 이 추적 시퀀스는 우리의 일상에 카메라가 얼마나 많이 퍼져있는지, 나아가 우리의 활동 동선 자체가 카메라의 존재와 함께 조직돼 있음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범인이 아무리 용의주도하게 도망쳐도 그는 카메라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다. 카메라에 찍히는 건 물론,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누군가의 행적을 드러내는 사회. <오! 문희>의 세계 속에서 모든 사람은 어디서 무얼하든 카메라와 실시간으로 관계를 맺는 중이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한 가지 꺼림칙한 면을 언급하고 싶다. 두원은 끈질긴 추적 끝에 범인 중 한 명인 재숙(김예은)을 찾아내고 나아가 공범인 강형사(최원영)의 연루 사실까지 밝혀낸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강형사는 두원의 어머니를 납치해 살해하고 이를 자살로 위장하려 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던 나는 어머니가 죽음에 놓인 상황보다 저 현장에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에 더 신경이 쓰였다. 즉,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이를 증언할 영상이 부재하기 때문에 혹시나 완전 범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운좋게 천장이 무너진 덕분에 어머니는 목숨을 구했지만 만약 이 변수가 없었다면, 강형사는 뺑소니로 체포되더라도 살인 혐의는 피했을지 모른다. 이런 섬뜩한 가정 자체가 카메라의 강력한 힘을 다시 상기시킨다. 2021년의 우리는 영상 없이 사건의 진실에 얼마나 가닿을 수 있을까? 또는 영상 없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면 얼마나 더 큰 노력을 쏟아야 할까?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즉시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의 일상을 조직하는 구조와 사방에 편재한 카메라의 기록 능력이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2.
그런데 <오! 문희>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은 카메라 영상을 통해 범인을 잡는 두원과 문희의 활약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고가 기록된 영상을 보지 않겠다고 거부하며 괴로워하는 짧은 순간이 기억에 깊게 남았다.
여전히 사건이 오리무중일 때, 두원은 강형사에게 사고 순간이 찍힌 CCTV 영상을 전달 받는다(나중에 범인으로 밝혀지는 강형사는 이 영상만으로는 자신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두원의 딸이 자동차에 부딪히는 순간이 담긴 이 영상은 비록 차의 번호판이나 운전자의 모습은 담겨 있지 않지만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서는 꼭 보아야 하는 증거이다. 실제로 두원은 이 영상을 통해 범인이 탄 차량이 산타페라는 걸 밝혀내기도 했다. 그러니 언뜻 생각하면 1분이라도 빨리 이 영상을 확인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그 장면으로 바로 넘어가는 대신, 노트북 앞에서 영상 재생을 망설이는 두원의 모습을 공들여 묘사한다. 두원은 괴로운 표정으로 노트북 앞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있고 이를 보다 못한 두원의 사촌 송원장(박지영)은 “똑바로 봐. 그게 애비인거여”라며 두원의 머리를 노트북 화면 앞으로 민다. 그러나 두원은 눈동자를 아예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까지 영상을 보지 않으려하고 긴 소동 끝에 겨우 영상을 확인한 뒤 오열한다.
이 장면이 내게 왜 이렇게 뭉클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카메라를 이용해 모든 것을 영상으로 만들고 누구나 그 이미지를 볼 수 있게 하는 시대에서 여전히 볼 수 없는 영상이 있다고 말하는 <오! 문희>의 고집스런 태도는 지워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두원은 범인이 찍힌 영상이 어디엔가 분명 존재할거라고 믿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영상을 찾아내려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영상이 자신의 눈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영상을 보지 않겠다고 또는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비록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일지라도 그 영상 안에는 소중한 사람의 고통받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두원은 지금까지 수백, 수천 건의 교통사고 영상을 봐왔을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에도 눈을 크게 뜨고 영상을 꼼꼼하게 확인해야하지만 그는 차마 딸의 고통이 기록된 영상에는 시선을 주지 못한다. 적어도 두원에게는 어떻게든 보기를 거부하고픈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러니 <오! 문희>는 모순을 내포한 영화라 말할 수 있다. 뺑소니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두원은 카메라와 영상의 강력한 힘에 크게 기댄다. 아마 저 많은 카메라들이 영상을 제공해주지 않았다면, 딸의 생사 여부와 관계 없이 범인을 영영 찾지 못했을 것이다. 슈퍼마켓의 CCTV 영상에서 범인의 차를 발견했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기쁨의 탄성을 질렀을 것이며, 여기에는 카메라의 강력한 힘을 향한 경탄과 매혹이 분명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카메라는 관람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영상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딸의 사고 순간을 기록한 영상은 이후에도 두원의 (무)의식에 상처로 남아 반복된 악몽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둘러싼 영화 속 사건들이 단지 가상의 소재에 그치지 않고 영화 밖 우리의 현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카메라 렌즈들의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그중 어떤 영상은 관람 가능 여부에 관한 까다롭고 괴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때 내가 지을 표정이 두원의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라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오! 문희>는 우리에게 불길한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https://drive.google.com/file/d/1YkGR_hxut1AW_3_Z9yTITbb3Fhsg3qxa/vi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