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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로그라드> 역시 <이반>과 비슷하다. 굉장히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영화인데 이게 너무 노골적이다 보니 어느 순간 프로파간다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볼셰비키 고발 영화처럼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의 주인공인 스테판은 헌신적인 볼셰비키다. 그는 광활한 러시아의 숲(타이가)의 한 지역을 지키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 중이다. 그런데 자신의 오랜 친구인 바실이 반反 볼셰비키란 사실을 알게 된다. 정부에서는 이 지역에 ‘아에로그라드’(영화의 맥락상 공군 부대를 뜻하는 것 같다)를 만들려고 하는데 바실이 이웃 사람들과 함께 그 계획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스테판은 이들의 방해 공작에 맞서 볼셰비키의 의지를 관철한다.
역시나, 이렇게 정리하면 더할 나위 없이 매끈한 프로파간다처럼 보이지만 <아에로그라드>의 마지막 장면은 말로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이상하다. 스테판은 짧은 전투 끝에 결국 바실을 체포한다. 그리고는 바실을 숲 속으로 끌고간 뒤 ‘우리 볼셰비키는~ 이러이러한 죄목으로~ 바실을 사형에 처한다!’라고 하며 그 자리에서 그냥 총으로 쏴 죽여버린다. 스테판은 친구를 죽이는 것에 대해 조금은 착잡한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행동에 있어서는 거침이 없다.
이 장면 앞에서 나는 <아에로그라드>가 볼셰비키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칭송하는 영화인지, 아니면 이데올로기에 미쳐서 최소한의 인간성조차 지워버린 극좌파 볼셰비키의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인지 혼란을 느꼈다. 명색이 프로파간다 영화라면 자기 체제의 우월함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설득시켜야 할텐데, 이 영화는 그런 점에 있어 완벽하게 실패하기 때문이다. 즉, <아에로그라드> 속 주인공들은 체제의 승리를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잊어버린 괴물처럼 보인다. 적어도 나에게는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게 반기를 든, 때로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바실과 그의 친구들이 좀 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반>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연출한 도브젠코 감독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도브젠코는 당시 스탈린 정부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 참고로 이 영화에는 싸움에 진 일본인이 할복을 하고 볼셰비키가 그걸 누운 채로 낄낄거리며 구경하는 기괴하고 끔찍한 장면도 나온다. 다시 한 번 도브젠코 감독의 생각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