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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굴: 사랑의 찬가” / 유지완 / 윈드밀

- 전체 공연 시간은 1시간 정도.

- 공연이 시작되면 유지완을 포함한 연주자들이 등장해 각자의 자리로 간다. 유지완 포함 다섯 명은 모두 떨어져 있으며, 벽이 중간에 있는 공간의 특성상 관객은 이들을 한눈에 볼 수 없다.

- 일단 유지완이 마이크를 들고 글을 읽으며 공간을 한바퀴 돈다. 관객은 유지완을 따라다닐 수도 있고 그냥 자기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도 있다.

- 그후 연주자들이 베이스, 기타, 드럼 등의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천장에 위치한 스피커 때문에 관객은 어디에 있든 비교적 균일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내 생각에 이 부분이 공연의 핵심). 이때 유지완은 계속 글을 읽는다.

- 특정 시점이 되면 유지완이 (드럼과 베이스 사이에 있는) OHP 앞에 앉아 색색의 셀로판지에 네임펜으로 글을 쓴다. 이때 의미 불명의 소리도 함께 낸다. 

- 한편 공간의 구석에는 작은 노트북이 놓여 있고, 여기에서는 고전 영화를 편집한 영상이 계속 나온다. (아마도) 게이 에로티시즘에 관한 영상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 글을 다 쓰고 나면 처음 글을 읽었던 건반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고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 연주한 음악과는 달리 처음과 끝이 분명한 ‘노래’의 형식을 띠고 있다. 멜로디도 귀에 착착 달라 붙는다.

- 노래가 다 끝나면 잠시 침묵의 시간이 이어진 뒤 유지완이 ‘감사합니다’하고 말하며 공연이 끝난다. 

- 연주와 낭독, 그 사이의 소음까지 모두 하나의 음악이라고 했을 때, 그 음악의 구체적인 출처를 직접 발로 걸어다니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대신 관객은 어디에 갈지, 무엇을 볼지 선택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기타 연주를 보는 동안은 지금 유지완이 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영상을 보는 동안은 드럼 연주를 볼 수 없다, 등등.

-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유지완이 셀로판지에 네임펜으로 글씨를 쓸 때 계속 ‘오타’가 나는 게 재미있었다. 

(2021년 12월 11일)

 

<무덤이 웃기 전에> 상영+퍼포먼스 / 백종관 / MMCA서울

- “극장 없는 영화, 영화 없는 극장”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 보통 극장에서 관객이 하는 행위는, 또는 할 수 있는 행위는 규범적으로 확실하게 정해져있다.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보기. 그리고 이때 극장은 영화의 상영 시작 직전에 불을 끄고, 상영 종료 직후에 불을 켠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집중하면 된다고 가이드를 주는 셈이다. 다시 말해 영화 상영 전 광고를 아무리 많이 틀어줘도 관객은 그 광고를 영화 본편과 분리시켜 생각한다. 

- 또한 영화 상영 중간에는 스크린에만 집중하는 게 변하지 않는 약속이다. 그외의 사건은 보통 ‘상영 중 사고’로 간주된다. 관객 중 누군가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다거나, 내 앞을 가로질러 걸어도 전부 영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 그런데 이날은 영화 시작 전부터 영화에 대한 영상을 틀어 놓고 있었고, 불이 켜지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영화에 대한 영상을 조금 더 보여줬다. 미술관 직원이 나와 “이제 토크가 이어질 예정입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나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영화였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집중해야 했던 걸까? 극장의 기존 규범을 빗겨가는 아주 단순한 장치가 예상보다 많은 질문을 안겨주었다.

- 게다가 영화 상영 도중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백종관 감독이 불쑥 일어나 극장을 왔다갔다 하며 상영관 앞뒤에 놓여 있던 그림의 배치를 바꾸었다. 그동안 극장 불은 켜지지 않았기에 관객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지만 감독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고개를 쭉 빼고 감독의 행위를 확인하려 노력했고 심지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봐야 했다. 즉 영화가 상영 중인 스크린이 아닌 극장의 뒷편을 바라본 것인데, 이 낯선 행위와 풍경이 묘하게 짜릿(?)했다. 

- 그런데 나는 ‘저 사람’이 백종관 감독이란 걸 바로 알았지만 만약 백종관 감독을 모르는 관객이었다면 어땠을까? 잠깐이지만 진짜 무슨 사고가 일어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영화 본편’은 굉장히 실험적으로 지루한 작품이었고(욕 아님), 덕분에 졸음과 싸우면서 영화 외적인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2021년 12월 12일)

 

모순의 굴: 사랑의 찬가 (직접 촬영)
무덤이 웃기 전에 (백종관 감독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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