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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몬순 (니마 겔루 셰르파)
처음은 가랑비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강아지와 놀고, 무지개는 하늘을 장식한다. 그러나 비가 점차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거리는 곧 물에 잠긴다. 카트만두를 찾은 사람들은 엎드려 절을 할 수 없으며, 사람들은 흙탕물을 퍼내느라 바쁘다. 폭우가 바꾼 일상의 풍경이다. 〈카트만두 몬순〉은 어떤 나레이션이나 자막도 없이 카트만두의 비오는 풍경을 기록한다. 이 이미지만으로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읽는 건 쉽지 않다. 대다수의 장면들은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됐으며, 비가 많이 내리는 것도 네팔 우기의 평범한 풍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기후 변화로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가 바로 네팔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일상적인’ 모습은 점차 심각해질 어떤 위기의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본 건 일상의 평온이 아니라 파국의 예고였을지 모른다.
나는 그게 좋아 (니다 메붑)
파키스탄 여성들의 섹스에 관한 솔직한 고백을 담은 〈나는 그게 좋아〉는 도발적이고 유머러스하다는 첫 인상을 준다. 여전히 여성의 성욕이 죄악처럼 여겨지는 여성혐오 문화 내에서 자신이 섹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떤 섹스를 제일 좋아하는지 자유롭게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유쾌한 해방감을 준다. 여기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남성성’을 뽐내는 남자들의 과장된 행동은 여성들의 말과 미묘한 불일치를 만들며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웃음 대신 답답한 예감과 어두운 두려움이 다가온다. 결국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은 영화 안에서 철저하게 익명으로 남아야 하며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낼 수 없다. 영화 속 공공장소에는 오직 남자들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는 그게 좋아’라고 말하는 여성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 한다.
파티 포스터 (리시 찬드나)
인도에는 화려한 대형 포스터를 만드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유명인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얼굴을 크게 확대한 포스터를 벽이나 나무에 경쟁하듯 걸고, 이제는 여기에 ‘평범한’ 사람들도 합세한다. 〈파티 포스터〉는 ‘세탁공’으로 잘 알려진 인도의 노동자들이 자신들만의 포스터를 정성껏 만드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작품이다. 세탁공들의 생생한 일상, 코로나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의 근심도 이 영화의 중요한 장면이지만,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건 포스터 내의 이미지 배치와 수정을 통해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하려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세탁공들은 서로 자신의 얼굴을 더 키우려하고,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이때 현실과 이미지는 복잡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관객은 동시대 이미지의 특권적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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