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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의 루벤 외스트룬트 감독이 만든 <포스 마쥬어 : 화이트 베케이션>은 뜻밖의 사건과 마주친 인물들의 내면을 제한된 공간 속에서 그린 영화이다. 어쩌면 ‘제한된 공간’, ‘뜻밖의 사건’, ‘인물들의 내면’ 등의 단어 만으로 이 영화의 전개 양상과 그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은 휴양지에서 눈사태라는 의외의 사건을 만나고, 그때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혼자 몸을 피한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부부 사이에는 말로 하기 힘든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영화는 집요하게 그 불편함을 묘사하고 또 묘사한다.
     따라서 영화 전체가 동어 반복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초반부의 연출은 탁월하지만 그 뒤로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아내는 신경질적인 행동을 보이고, 남편은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식들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주위 사람들 역시 어쩔 줄 몰라하며 그 신경질에 전염되어 간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건 부부의 싸움과 같은, 보는 순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아니다. 즉 남편이 거짓말을 하고, 아내가 그걸 지적하고,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씩 자신의 생각을 보태는 장면들. 이 장면들은 화면에 드러난 것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필요 이상으로 길게 보여주는 산의 밤 풍경, 그 어둠을 밝히는 이상할 정도로 선명한 불빛들, 과장된 초록색 불빛의 클럽 풍경과 같은 불가해한 이미지들이 이 영화의 지배적인 분위기인 불안을 은밀히 형성한다.
     이를테면 부부가 말싸움을 할 때는 관객들이 그들을 비판할 수도 있고, 나름의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한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언어가 쉽게 개입할 수 없다.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어떤 ‘숨은 의미’를 독해할 만한 시각적 정보 조차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이미지들은 공백으로 남는다. 나아가 그 공백 앞에서 만들어진 불안은 해소될 계기를 찾지 못하고 주인공의 심리 뿐 아니라 영화의 모든 장면 속으로 깊게 스며든다. 겨울의 스키장을 배경으로 비발디의 『여름』이 울리거나 밤 하늘에 이상한 비행 물체가 날아다닐 때도 관객은 그 이유를 따져 물을 수 없다. 그저 그 이상함을 끝까지 끌어안은 채 영화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물감이 영화 속 현실을 계속해서 낯설게 감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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