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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에 관한 고민
한국에서 단편영화는 매해 천 편이 넘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경향을 쉽게 요약하기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최근 한국단편영화를 보며 느낀 특징 중 하나는 소위 ‘사이다’를 찾는 모습이었다. 일시적 유행어의 단계를 지나 요즘은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사이다’가 영화에서는 어떻게 등장하고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한 문제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정의롭지 못한 누군가를 비난하고 징벌하는 통쾌한 순간을 욕망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정의롭지 못한 누군가’를 그냥 ‘악당’으로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 악당의 양상은 다양하다. 갑질을 일삼는 회사 상사, 상습적 성희롱범, 정서적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 왕따 주동자인 일진,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 사장,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모욕하는 시민들, 가난한 친구를 무시하는 부잣집 아이 등등. 그리고 영화는 이들을 매우 추악하고 혐오스럽게 묘사하는데 공을 들임으로써 악당을 향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정말 통쾌한 복수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현실의 높은 벽에 막혀 절망할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세상에 이렇게 나쁜 사람이 있다고 고발하며 ‘사이다’를 찾는 모습은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다보니 한국단편영화를 쭉 모아서 보다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불의와 부조리와 분노가 이 안에 모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그 분노가 필터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머지 창작자가 화를 시원하게 분출하기 위해 나쁜 인물을 더 나쁘게 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구도를 많이 보다보면 ‘문제가 정말 이렇게 단순하가?’라는 생각도 든다. ‘사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선한 주인공과 나쁜 악당의 뚜렷한 대비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악당은 더욱 혐오스럽게 묘사되고 그럴수록 선한 주인공의 고통스럽고 억울한 상황은 더 효과적으로 강조된다. 물론 언론의 사회면만 봐도 영화 속 사건이 거짓말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지만, 단순한 선악 구도를 반복해서 보다보면 이 영화들에 현실을 고발하는 것 이상의 어떤 성취가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나아가 모든 부조리와 억울한 감정이 시원하게 해결되는 ‘사이다’스러운 카타르시스가 실제로 가능한지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STAFF에서 상영하는 한국단편영화들의 조심스런 고민이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 영화들은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묘사하면서도 ‘사이다’를 상상하기 보다는 그 그림자 안에 또 다른 그림자가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나 역시 그 그림자의 일부분이 아닌지 성찰한다. 이런 흔치 않은 태도가 수많은 ‘사이다 영화’ 속에서 더욱 값지게 다가오는 건 물론이다.
<외숙모>(김현정), <어떤애와 다른애 그리고 레이>(이현경), <양궁소녀>(김수림), <실버택배>(김나연)는 모두 현재 한국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본다. <외숙모>는 전통적 가부장제 속에서 노골적으로 배제당하는 이혼 여성을, <어떤애와 다른애 그리고 레이>는 청년 빈곤, 또는 도시 빈민의 현실을 냉정하게 묘사한다. 또한 <양궁소녀>는 십대 사교육 현장의 민낯, <실버택배>는 노인 세대의 위험하고 서글픈 현실을 그리며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니, 짐작컨대, 감독들은 이 이야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사이다’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외숙모>의 젊은 주인공이 집안의 어른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 장면이나 <양궁소녀>의 주인공이 엄마와 사회에 분노를 터트리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때 우리는 각 영화 속에서 처벌 받아 마땅한 악당을 손쉽게 지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그 대신 문제를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거나 선과 악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는 쪽을 택한다. 외숙모와 다른 가족들 사이에 과거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외숙모>의 시나리오, <어떤애와 다른애 그리고 레이>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강조하는 결말, <양궁소녀>에 잠시 드러난 (딸이 아닌) 어머니만의 고민, <실버택배>의 할머니가 짓는 애매모호한 무표정 등을 생각해보자. 이런 요소는 정의 구현의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불가능하게 만들며 관객의 고민이 영화 속 세계에 좀 더 오래 머물도록 이끈다.
물론 ‘사이다’가 그 자체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사이다’의 통쾌함이 답답한 현실에 갇힌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에 상영하는 작품들은 막힌 속을 뚫어줄 ‘사이다’를 찾기보다 바라보기도 힘든 답답한 현실의 문제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쪽을 택했다. 이 선택만으로도 유의미한 희소성을 획득한다고 생각한다.
+ 아무래도 관객이 그리 많지 않은 프로그램이지만.. 평소 상영하기 힘든 빛나는 단편들을 상영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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