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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 다무라 유미 / 1~6권(연재중)
소위 ‘순정 만화’의 예쁜 그림체를 갖고 있지만 꽤 끔찍한 사건들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추리 만화다. 왠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약간 눈치도 없어 보이는 천재형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사건 현장에서 멀뚱한 표정으로 사정 없이 진실을 파헤친다. 경찰을 비롯한 조연들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주인공을 견제하지만 나중에는 그의 도움을 받고 결국 친밀감까지 느낀다. 그리고 주인공은 변함 없는 태연한 표정으로 유유히 일상으로 돌아간다(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사건과 마주친다).
사실 이런 설정과 전개는 많은 소설과 만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만화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요소는 적절한 거리감이다. 백수인 주인공이 사건과 만나는 방식은 언제나 우연이다. 주인공은 버스에 타거나 산책을 하는 동안 사건과 마주치고, 그때마다 사건 당사자들의 가슴 아픈 비밀과 속사정을 알게 된다. 갑자기 타인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것인데, 이 만화는 이때 발생하는 주인공의 책임감을 아주 능숙하게 잘 다룬다. 너무 흥미 본위로 접근해 경박하게 그리지도 않고, 너무 진지하게 파고들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말로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영역인데도 작가는 매 에피소드마다 이 영역을 잘 포착한다.
발간 속도가 느린 게 좀 불만이지만 디테일이 워낙 많은 작품이라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서 읽어도 매번 새로운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다시 잠깐 봤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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