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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증언 - 노동운동 속에서 선구적인 여성들 / 하네다 스미코 / 1996

   <여자들의 증언>(1996)을 연출한 하네다 스미코(1926~ )는 전후 일본 영화사, 특히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만든 선구자로 평가받는 감독이다. 일찍이 <마을의 여학교>(1958)를 연출하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80편이 넘는 작품 제작에 참여하며 여성과 노동, 도시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중 <여자들의 증언>(1996)은 일본 노동 운동 1세대 여성 활동가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성취는 물론 인터뷰이의 말 자체가 갖는 묵직한 무게감이다. 20세기 초 12살의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해야 했던 기억, 노동 운동을 하면서도 기모노 걱정을 함께 해야 했던 씁쓸한 순간, 운동의 ‘발전’을 위해 누군가의 아내로 남아야 했던 모순, 경찰에게 고문을 당했던 끔찍한 고통 등 <여자들의 증언>에는 어두운 시대를 돌아보는 소중한 기억들이 가득하다.
   <여자들의 증언>을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건 카메라 앞에 선 출연자들의 모습이다. 70대 이상의 노년에 접어든 활동가들은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생생히 끄집어내면서도 평온한 표정과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고, 또한 필요 이상의 비장한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 존경의 감정마저 들게 하는 이 우아한 기품은 시대와 치열하게 정면으로 맞섰고 지금도 그 정신을 잃지 않은 존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 같아 감동적이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 후배 활동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차분하게 들려주며 계속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전망한다. 하네다 스미코 감독 역시 끊임없이 미래를 모색하는 현재의 활동가들에게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재차 질문한다.
http://reversemedia.co.kr/article/535

노크 / 프리다 켐프 / 2021

   중년의 여성 몰리는 새로운 아파트로 집을 옮긴다. 낯선 사람들과의 어색한 인사 이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몰리는 천장에서 어떤 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층간 소음으로 생각했지만 점차 이 소리가 누군가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문제는 이웃은 물론 경찰도 몰리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 몰리는 과연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노크>는 2000년대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스웨덴 출신의 프리다 켐프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 극영화다. 요한 테오린의 동명 스릴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르적 긴장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이야기 전개 과정 자체보다 몰리의 불안과 마음속 혼란을 형상화하는 세심한 연출이다. 감독은 배우의 미세한 표정 변화, 작은 새의 날갯소리, 벽에 남은 정체 모를 희미한 얼룩, 길에서 잠시 마주친 타인의 짧은 눈빛에 모두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주인공의 흔들리는 심리를 최대한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 결과 관객은 현재 몰리가 외부의 위험에 얼마나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으며, 그의 신경질적 반응에도 공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노크’의 비밀을 추적하는 스릴러보다는 외부 세계로부터 소외당한 한 여성의 불안정한 심리를 설득력 있게 그린 작품으로 읽는 편이 더 적절하다. 다소 익숙한 소재와 전개에도 불구하고 <노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http://reversemedia.co.kr/article/532

더 치터스 - 청춘의 사기꾼들 / 폴렛 맥도나 / 1930

   기업을 함께 운영하던 사장 트래버스와 부하 직원 빌. 그러나 회사 운영에 어떤 안 좋은 사건이 생긴 후 감옥에 갇힌 빌은 트래버스를 향한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현재, 매력적인 여성 파울라는 능수능란한 연기와 함께 보석을 훔치는 사기꾼으로 대활약 중이다. 거대 갱단과 함께 화려한 도시를 종횡무진하던 파울라는 어느 날 리와 사랑에 빠지며 예상 못한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다.
   한 사기꾼의 극적인 삶을 그린 범죄 멜로드라마 <더 치터스-청춘의 사기꾼들>은 영화 자체는 물론 영화 외적인 이야깃거리도 풍부한 작품이다. 먼저 이 작품은 평소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호주의 초기 무성 영화이며, 감독인 폴렛 맥도나(1901~1978)는 세 자매와 함께 직접 제작사를 차려 활동했던 열정적인 영화인이었다. 감독의 언니인 마리 로레인(1899~1982)과 필리스 맥도나(1900~1978)는 <더 치터스>에서 각각 배우와 미술 감독으로 참여했으며 세 사람은 이후에도 호주영화사와 여성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작품의 고유한 매력도 뛰어나다.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활용한 미장센이나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감정을 고조시키는 연출 등은 지금보아도 아름다운 시각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사회의 전통적 도덕 가치를 의도적으로 흔드는 듯한 전개와 인물 묘사는 극 전체에 기대 이상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성 세대의 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나 결혼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수용하는 듯한 면도 때로 엿보이지만, 관점에 따라 그 반대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아 더욱 흥미롭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영화사의 멋진 여성 주인공 목록에 파울라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게 될 것이다.
http://reversemedia.co.kr/article/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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