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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서서히 쌓이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2017년 2월 15일, <21그램> 상영 후 김주혁 시네토크, 서울아트시네마)
한 사람의 배우는 필연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가진다. CG나 특수분장을 사용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 조건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배우는 얼굴을 포함한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 그리고 그 신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라는 조건에서 자유로운 배우는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연기를 통해 여러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건 가능하다. 선한 이미지의 연기를 주로 선보였던 배우가 지독한 악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는 자신의 이미지와 별개의 연기를 선보인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진 이미지의 영역을 넓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어떤 배우도 자기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 부분이 배우와 감독(혹은 제작자)의 선택이 만나는 지점이다. 배우가 직접 제작이나 연출을 맡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배우는 다른 창작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즉 역할이 먼저 만들어진 다음 그 역할에 맞는 배우가 캐스팅된다. 캐스팅 책임자는 캐릭터와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이미지의 배우를 캐스팅하고, 배우는 그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를 최대한 생생하게 연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배우의 이미지는 더 다양해지는 동시에 더 뚜렷해진다.
이를 전제로 하나의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만약 어떤 배우가 특정한 역할을 일정 시간에 걸쳐 계속해서 연기한다면 그 배우는 그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배우가 ‘피곤에 찌든 소시민’ 역할을 계속 맡는다거나 ‘똑부러지는 성격의 전문직’ 역할을 반복적으로 연기했다면 배우의 신체적 특징, 연기 스타일 등이 그 역할에 맞는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를테면 메릴 스트리프는 선역과 악역,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급, 차분한 성격의 캐릭터와 다혈질 캐릭터 등 수많은 배역을 오가며 자신의 연기 영역이 넓다는 걸 입증했지만, 그녀가 연기한 대부분의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지적이며 적절한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능력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절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많은 감독, 시나리오 작가, 제작진들은 긴 시간 동안 메릴 스트리프라는 배우에게 서 이런 이미지를 보았고 그 이미지를 이용해 영화 속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 동시에 메릴 스트리프 역시 남들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다음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배우의 역할이 있다. 배우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후에야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항상 뒤늦게 도착하는 존재다. 어떻게 보면 다른 창작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입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원래 이미지를 변주하는 사람도 배 우이며, 그 가상의 캐릭터에게 실제의 육체를 부여해주는 사람 역시 결국 배우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그 몸을 가진 주인은 그 배우뿐이기에 연기라는 과정에는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 촬영감독도 개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만, 배우는 창작의 중요한 주체 중 하나다. 우리가 어떤 영화에서 만난 감동적인 장면에 연출자의 능력과 작가의 노력 등이 깔려 있더라도 우리 눈에 최종적으로 들어오는 결정적인 시각적 대상은 결국 배우다. 다시 말해, 그 장면은 그 배우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처럼 배우는 자신이 가진 이미지를 한계가 아닌 도구로 삼은 다음, 적극적으로 자신이 맡은 배역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관객에게 특정한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데 기여한다. 이제부터 이 과정을 더 자세히 짚어보기 위해 한 명의 배우를 기억해보려 한다.
김주혁의 연기 스타일
사실 김주혁의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나는 오랫동안 김주혁의 연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가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특별한 매력이 있다거나 존재감이 강한 배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조연으로 연기 할 때는 물론이고 주연으로 나설 때에도 함께 연기하는 상대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여성 캐릭터와 공동 주연을 맡은 멜로드라마가 많은 건(<싱글즈>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광식이 동생 광태> <청연>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아내가 결혼했다> <방자전> <좋아해줘> 등) 의미 심장한 사실이다. 물론 파트너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배우의 뛰어난 장점 중 하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뒤 상대적으로 더 깊은 인상을 남긴 건 김주혁이 아닌 다른 배우일 때가 많았다. 나는 그가 개성이 약한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내 생각이 처음 바뀐 건 <뷰티 인사이드>(2015)를 보고 난 후였다. 한 명의 캐릭터를 여러 배우가 연기한 이 영화에서 김주혁은 ‘우진’을 연기한 수십 명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러닝타임이 127분인 영화에서 김주혁이 출연한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는 이상하게도 김주혁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김주혁이 맡은 역할의 서사적 중요성 (사랑하는 애인에게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통보하는 역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느낀 슬픔의 감정에는 김주혁이 보여준 연기의 몫이 컸다. 김주혁은 이 장면에서 자신이 가장 잘해왔고, 또 가장 잘할 수 있는 스타일의 연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차분한 어조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오열하는 등 과하게 감정을 드러내지도, 억지로 냉정한 표정을 짓는 것 같은 위악적 연기를 선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이별을 말하는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부드럽게 대사를 읊었고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반응을 관찰했다(이런 태도는 이상하게도 그가 상대 앞에서 조금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대사와 대사 사이에 여백을 두며 상대가 넉넉하게 자신의 연기를 시도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이때 ‘배려’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도 좋을 것 같다. 김주혁은 많은 영화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소위 ‘강렬한’ 연기에 시선을 뺏기는 게 아니라 상대 배우의 반응과 그 장면의 전체적인 분위기 를 함께 볼 수 있게 된다. <뷰티 인사이드>의 이별 장면에서 우진의 슬픈 표정만큼이나 이수(한효주)의 당황한 표정이 함께 기억에 남는 것도 김주혁의 연기에 기인한 바가 크다. 즉, 김주혁은 남 앞에 나서는 연기가 아니라 상대와 나란히 서는 연기를 했고, 감정을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는 연기가 아니라 절제에 더 무게를 싣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를 김주혁의 기본적인 연기 스타일로 여겨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공조>(2017)에서 냉혹한 테러리스트를 연기했고 <비밀은 없다>(2016)에서는 속물적이고 비열한 정치인을 연기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받은 작품인 <석조 저택 살인사건>(2017)에서도 잔인한 성격의 살인자를 연기하며 이른바 ‘센’ 연기를 보여주었다. 또 그가 <싱글즈>(2003),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 <좋아해줘>(2016) 등에서 신경질적이고 ‘까칠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변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김주혁의 기본적인 연기 스타일이 <뷰티 인사이드>나 <아내가 결혼했다>(2008) 속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한 <공조>의 ‘악당’이나 <싱글즈>의 ‘얄미운 남자’ 역시 이런 이미지의 연장선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본다. <공조>의 차기성이나 <비밀은 없다>의 김종찬이 가진 섬뜩한 모습은 상대에게 신뢰를 주는 김주혁의 기본적인 연기를 바탕으로 한 채 배신이라는 변주를 시도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공조>나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처럼 악당을 맡더라도 절제된 말과 행동으로 주위 동료로부터 신뢰를 받는 믿음직한 카리스마형 인물을 연기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 역시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방자전>(2010)이나 <좋아해줘> 등에서 그려진 상대에게 퉁명스러운 핀잔을 주는 캐릭터 역시 김주혁의 연기 이미지가 기본적으로 가진 부드러운 내면을 전제했기 때문에 더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다르게 말해, 김주혁이 엄정화나 최지우, 장진영이 연기했던 상대 캐릭터에게 아무리 무안을 주고 화를 내더라도 그는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관객은 김주혁의 연기를 보며 그 캐릭터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 김주혁의 캐릭터는 따뜻한 모습을 드러내며 모두가 예상했던 약속된 반전을 선사하고는 했다.
요약하자면 그는 많은 작품에서 다른 배우와의 조화가 돋보이는 차분하고 유연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정서적 안정감을 불어넣었으며, 관객은 그런 김주혁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보다 쉽게 동일시할 수 있었다. 또한 감독들은 김주혁의 이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절했다. 그 결과 김주혁은 20여년간 3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며 대중에게 신뢰를 쌓았다.
김주혁의 연기에 대한 어떤 오해
김주혁이라는 배우의 이러한 특징은 앞서 이야기한 그의 상대적으로 약했던 존재감과도 연관이 있다. 약간의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오랜 시간 한국영화계에서 좋은 연기의 기준으로 받아 들여진 것은 소위 ‘메소드 연기’였다.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내면에 몰입해 그 캐릭터의 감정과 심리 상태는 물론 (무)의식의 흐름까지 표현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는 메소드 연기는 원래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기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메소드 연기의 대명사가 돼버린 말런 브랜도, 로버트 드니로, 대니얼 데이 루이스 같은 배우의 연기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메소드 연기=뛰어난 연기’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글에서 메소드 연기의 개념과 그 바른 활용을 엄밀하게 따지려는 건 아니다. 또한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무엇보다 배우의 머릿속에 직접 들어가보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배우가 메소드 연기를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캐릭터에 대한 깊은 몰입과 강력한 동일시를 유도하는 메소드 연기의 어떤 방법론적 특징이 배우들에게서 소위 ‘강렬한’ 연기를 끌어냈다는 사실은 지적하고 싶다. 기본적인 대사와 몸동작, 심지어 얼굴 근육의 작은 움직임과 숨소리까지 빈틈없이 연기로 구현하려는 시도는 종종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로 이어졌고, 나아가 감정 표현의 세기를 증폭하는 결과까지 낳았다. 물론 캐릭터의 기본 성격과 배우의 메소드 연기가 적절하게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며, 무엇보다 관객에 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성난 황소>(1980)의 로버트 드니로가 다혈질의 권투선수인 제이크 라모타를 연기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로버트 드니로는 자신의 연기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며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했고, 관객은 그런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개인마다 입장은 다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메소드 연기는 배우가 자신의 연기력과 존재감을 동시에 증명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였으며, 이는 지금 한국영화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열연” “투혼” “몰입” “빙의” 등 배우의 연기를 칭찬할 때 빈번히 등장하는 용어들은 메소드 연기 혹은 ‘메소드 연기’로 통칭되는 어떤 연기 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변함없는 선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김주혁의 연기를 다시 떠올려보자. 그가 평소 메소드 연기의 방법론을 얼마나 참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김주혁이 연기한 캐릭터들을 보면 그가 일반적인 메소드 연기와는 거리가 있는 배우였다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는 한 명의 배우가 미처 다 통제할 수 없는 연기의 여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배우였으며, 캐릭터에 대한 과도한 몰입을 경계하는 배우였다. 한 공개된 자리에서 김주혁은 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물론 배우가 몰입을 해야 하지만 너무 몰입을 하면 연기가 이상해져요. 캐릭터에서 쑥 빠져나와서 객관적으로 봐야 해요. 자기 혼자 몰입해서 연기하면 그건 자위행위밖에 안 돼요.” 캐릭터에 대한 과도한 몰입보다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의 이런 태도는 긴 시간에 걸쳐 자신만의 고유한 연기 영역을 만들어 냈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생각이 짧았던 관객은 그가 존재감이 부족하며, 심지어 개성이 약한 배우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소위 ‘천만영화’라 불리는 15편의 한국영화 중 김주혁이 출연한 영화가 한 편도 없다는 사실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였지만 제작자들이 어떤 종류의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이름은 아니었다. 조심스레 말하자면 이들은 (천만영화의 공통점이기도 한) 적절한 순간 마다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해야 하는 캐릭터와 김주혁이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김주혁의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귀한 장점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김주혁이 더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김주혁은 지난 10월 30일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다만 이 글의 맥락 안에서 그의 새로운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고 슬프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최근 몇 편의 장르영화에 악역으로 출연하며 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기 시작했고, 이와이 슌지의 중편 <장옥의 편지>(2017)에 출연해 짧은 분량 안에서도 일상 속의 복잡한 뉘앙스를 안정적으로 해석하며 더 깊이 있는 연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을 통해 그야말로 놀라운 순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한(또는 두)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몇 번씩이나 진심을 표현하려 노력하는 남자를 연기한 김주혁은 우리가 상투적으로 ‘진심’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상태를 매 장면마다 다양한 결로 표현하며 홍상수의 세계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며 (홍상수의 영화 속 배우가 거의 그렇듯) 김주혁이 홍상수의 다음 영화에도 출연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주길 기대했었다. 즉, 멀지 않은 시간 안에 김주혁은 아직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았고, 그 연기는 홍상수의 세계를 보다 역동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게 됐다. 마지막으로 김주혁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맺고 싶다. 그는 “아무리 연기를 해도 단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으며 “최대한 그 캐릭터의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해도 “그 사람과 똑같이 될 수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는 의례적인 겸손의 말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 다시 이 말을 떠올리면 배우 김주혁이 평소 연기에 대해 갖고 있던 고민이 간접적으로 읽혀 계속해서 그 뜻을 곱씹게 된다. 그는 배우와 캐 릭터 간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의식하고 있던 배우였고, 그 간극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배우였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한 적이 한 번도 없다던 김주혁의 연기는 그 변함없는 스타일로 몇 번이고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안겨줬다. 어쩌면 그의 ‘불만족’이 우리가 기억하는 김주혁의 신중하고 차분한 연기를 만들어낸 건지도 모른다. 그는 아주 드물고 귀한 개성을 가진 배우였던 셈이다. (2017년 12월)
https://www.kofic.or.kr/kofic/business/rsch/findPublishDetail.do?boardNumber=40&flag=1&pubSeqNo=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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